독서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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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6-06-15
기 고 자 김서정
발행호수 154

“너, ‘죄와 벌’ 읽었어?” “그럼, 어릴 때 다 읽었지!”
고전을 완독하고 싶으면 독서토론모임에 가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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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노트르담의 꼽추’, ‘죄와 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폭풍의 언덕’, ‘좁은 문’, ‘베니스의 상인’, ‘올리버 트위스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먼저 외국 소설이다. 그다음은 초등논술 필독서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아이들이 위의 책을 읽고 논술 글을 쓴다는 말인가? 그렇다. 다만, 완역판을 읽지 않고 누군가 얇게 짜깁기한 다이제스트 판을 읽을 뿐이다. 줄거리 위주로 정리된 책을 읽고, 아이들은 평생 그 책을 읽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방문 판매자에 떠밀려 억지로 떠안은 세계명작 문고판이 마루 한 편을 장식했고, 마땅한 놀이가 없던 아이들은 그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 그 책이 다이제스트 판임을 알고 성인이 되어 완역판을 읽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문고판으로 끝을 맺는다. 완역판을 접해 보니 책 두께에 주눅이 들고, 몇 장 넘기다 보니 너무 세세한 글들이 장황하게 이어져 있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다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현실에 당장 필요한 자기계발서 위주의 책들만 선호했다. 그런 책들이 자신의 물질적·정신적 삶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러한 책들의 뿌리가 고전에 있다고 가늠은 하지만, 고전 읽기가 만만치 않아 미루다 못해 아예 포기하고 살았다. 고전은 청소년이나 대학생의 필독서일 뿐 어른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고전을 다시 들여다보는 경우가 생겼다. 경험상 다이제스트 판이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만, 솔선수범해서 고전을 완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출판업자, 예술가, 학계 등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이 고전을 통해 독서의 참맛을 알거나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에는 고전이 멀어도 한참 멀어만 보인다. 한마디로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다음 문장을 보자.

“노파는 실수였다고 치자. 그러나 문제는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노파는 질병에 불과한 존재이다…. 나는 어서 뛰어넘고 싶었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죽인 것이다! 나는 원칙을 죽였지만, 도저히 그것을 뛰어넘을 수가 없어서, 아직 이쪽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만 죽일 줄만 알았을 뿐이다. 아니 그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 하하하! 어째서 너희들은 나를 빼놓았느냐? 나도 꼭 한 번밖에는 살지 못하므로, 나 역시 살고 싶단 말이다…. 아, 나는 미적인 취향을 지닌 이[蝨]에 불과하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글이다. 5백 페이지 2권짜리로 완역된 이 책의 핵심 문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완독한 사람들의 경우 유독 이 문장에 많은 관심을 두는 것 같아 옮겨 놓았다. 특히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죽인 것이다!”라는 문장은 완독하지 않고서는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완독을 하고 나면, 그 느낌이 온전히 전해져온다. 바로 내 삶의 원칙이 무엇일까에 대한 깊은 울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연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사고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하지만, 언제 내 자신의 행동을 그처럼 열심히 들여다보았는지 반사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즉, 고전은 그 어느 책보다 깊고도 넓은 생각이 펼쳐지고, 그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줄거리를 아는 것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다. 그래서 고전의 힘은 위대하지만, 능동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아 완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독서토론모임이다. 당면 문제를 담고 있는 책들을 읽는 것도 괜찮지만, 간혹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전을 독서목록에 넣고 함께 읽으면 완독해낼 확률이 높다. 만일 혼자서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다 보면 중간에 지쳐서 그만두기 십상이다. ‘이 시간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 하는 회의가 수시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 않아서다.

토익 한 페이지 더, 새로운 정보 습득 하나 더, 화제의 책을 읽었다는 으스댐 하나 더 등등이 생존 지수를 높여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내를 갖고 읽고 나면 그 충만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면서 두께 면에서 내용 면에서 앞으로 그 어떤 책도 완독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난다. 그렇게 독서는 고전의 길로 접어들고, 인간의 근본에 대한 성찰에 다다른다. 삶이 깊어지고 생각이 유연해지고 웬만한 것은 모두 수용하는 인성(人性)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독서로 사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동안의 숙제를 풀었습니다. 책을 그렇게 읽는다면서 어째 ‘죄와 벌’도 읽지 않았냐며 한 소리 들었는데, 독서모임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두가 안 나 먼저 초등논술 ‘죄와 벌’을 읽었는데, 아니다 싶어 완역판을 읽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뭔가 심리 밑바닥까지 가본 느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껍고 어려워 주눅이 드는 책, 독서토론모임으로 함께 읽어나가는 모습이 늘어났으면 한다.

김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