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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6-08-15
기 고 자 김서정 기자
발행호수 158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말이든 그림이든 쏟아내세요.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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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다 내려놓으세요. 마음을 비우세요”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잘 받아들이면 신기하게도 마음의 짐이 덜어지면서 다음 일에 박차를 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깊이 들어가면 한없이 깊이 들어갈 부분이지만, 우리 몸의 작동 과정을 눈여겨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내려놓는다’는 것은 뇌에 집중되어 있는 여러 생각과 몸 안에 박혀 있는 감정의 덩어리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이때의 생각과 감정은 내려놓는 것과 상호작용하는 상대의 것들도 안고 있어 실제로는 무겁습니다.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떼어내면 우리 몸은 자연스레 가벼워지고, 그렇게 되면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다음 일에 적극성을 띠게 됩니다.

다음으로, “마음을 비우세요”는 섭생 과정에서 빚어진 인식 체계입니다. 우리 몸은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한없이 먹을 수만은 없습니다. 속이 차면 비워야만 다음 음식에 대한 기대가 생깁니다. 그렇지 않고 먹는 일에만 기쁨을 느끼면 아마 우리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비워야 새로운 의지를 불태울 수 있습니다. 즉, 내려놓는 것과 마음을 비우는 것은 그 상태가 목적이 아니라 다음 일을 추진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합니다. 몸이 아프면 적극적으로 몸 상태를 설명하면서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마음이 아프면 좀처럼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드러냈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마음도 몸도 더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쉽게 털어놓지 못한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소장이자 국내 유일의 미국 공인문학치료사 이봉희 나사렛대 영어학과 교수가 쓴 ‘내 마음을 만지다’에 소개된 이야기를 옮겨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지만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임금이 살았습니다. 그 임금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수치스런 비밀이 있었습니다.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커다랬던 것입니다. 임금은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왕관 속에 감춘 이 진실을 이발사에게만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발사에게 비밀을 누설할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임금의 비밀을 지켜야만 하는 이발사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왕관 속에 감춰진 진실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던 이발사는 그것이 마음의 짐이 되어 끝내 육체적인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발사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인적 없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땅에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다 비밀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다음 다시 구덩이를 메웠습니다. 이발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날아갈 듯 가벼운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땅 위로 갈대가 자라나고, 언제부턴가 바람이 불면 갈대숲이 술렁이며 이상한 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발사가 쏟아낸 말들이 되살아나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온 나라에 소문이 퍼졌고 결국 임금도 수치심 때문에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하고 당당해졌습니다.”

이봉희 교수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신화는 정신적으로 억압된 감정들이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털어버리지 못한 말들은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남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나만의 언어가 있다면 후련하게 내 안의 비밀을 쏟아버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 마음을 비운다는 것, 이것은 어찌 보면 내 안의 억눌린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쏟아내는 것입니다. “대면하기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망각한 이야기들, 무거운 쇳덩이처럼 내 마음속 심연에 가라앉은 죄책감, 용서하거나 용서받고 싶은 긴 사연들, 어린 날의 공포심과 수치심,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나 그리움, 다시는 만날 길 없는 사람에게 꼭 해명하고 싶은 말 등”을 내면에서 꺼내어 과감히 말해야 합니다. “무의식에 깊이 묻어둔 심리적 외상은 우리의 정신과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결국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는 “나는 내 꿈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는 내 현실을 그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고통스런 현실에 직면한 나의 진짜 감정을 그림이든 말이든 글이든,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내는 것, 그것이 내려놓는 것과 마음을 비우는 것의 출발점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다음 삶을 이어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행복 요소일 것입니다. 이발사도, 임금도, 프리다 칼로도 아마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