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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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6-05-01
기 고 자 감사나눔신문
발행호수 151

선행이야기
나이팅게일의 꿈은 현재진행형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아늑골을 떠나 어실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표주박처럼 생긴 그 동네는 주둥이 부분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읍내를 오가는 버스정류장이기도 하다.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건너편이 우리 집이고, 뒤쪽 배나무 밭을 휘돌면 고갯마루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중학교에 올라간 나는 등교 전 마당에서 놀다가 버스가 초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출발하면 쏜살같이 부엌을 가로질러 배나무 밭 사이를 지나 고갯마루 정류장에 허겁지겁 도착해 버스에 오르곤 했다. 반대로 읍내에서 돌아올 때는 초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일부러 내리기도 했다. 고갯마루 정류장을 지나면 가속도가 붙어 청룡열차를 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가 배나무 밭 사이로 들려왔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애앵-’ 굉음을 내던 그 오토바이는 중심을 잃고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소나무로 돌진했다. 소나무에 부딪친 오토바이와 운전자는 제각각 내동댕이쳐졌다. ‘피를 많이 흘렸을 거야.’ 나이팅게일이 꿈이었던 나는 급히 사랑방에 있던 구급함을 찾아들고 즉시 길 건너편 소나무 아래 ‘전쟁터(?)’로 달려갔다.

그러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피의 향기’가 풍기는 처참한 현장에서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던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나 스스로 구급함을 열고는 다리의 피를 닦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곤 “꼬마야, 고맙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곤 굉음을 내며 사라져버렸다.

한동안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잠시라도 나이팅게일이 될 수 있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겠다는 ‘나이팅게일’의 꿈이 꺾인 그날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슬픔에 빠졌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이팅게일’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음을. ‘감사(感謝)’를 만난 지 3년이 지난 오늘의 나는 ‘피의 향기’ 대신 ‘감사의 향기’를 품은 채 여전히 ‘전쟁터(?)’를 누비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