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섹션

Extra Form
발행일자 2016-08-01
기 고 자 인천=이춘선 기자
발행호수 157

‘애달프나 강한’ 이민 역사를 간직한 미주 한인들의 이야기
삶이 아팠던 그들에게 쓴 감사편지가 갖는 의미


12-미주 한인들 이야기.jpg

 

“배 속에서 배 기름과 소말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고, 밥을 먹으라고 빠기가 땡땡이를 땡땡땡치면 다른 사람들은 가서 밥을 가져와 먹는데 나는 구역질이 나고, 두 내외가 드러누워야. 아래층 윗층, 맨 아래층에는 내가 눕고 그 윗층에는 남편되는 이가, 둘이 열흘을 굶고 있으니 기운이 하나도 없어. 그 전에 대한 땅에서 삼이라는 약을 가져온 거, 약을 그걸 칼로 갈아 가지고 물 떠다가 그거 한 갑씩 물 먹고 삼가루 조금 타 가지고 먹기를 한 주일 반 열흘 동안 먹고, 호놀룰루 오니깐 머리가 흔들흔들, (중략)  하와이 사람의 크기가 아마 팔척 구척 되는데, 얼굴이 구릿빛이나 새까만 사람이 눈이 뚱그런게 나를 번쩍 들어 안아 들어 놓고 손목을 잡아끌어.”

한국이민사박물관(신은미 관장)에 소장되어 있는 함하나 할머니의 육성 고백이다.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을 떠난 함 할머니가 열악한 수송 환경 속에서 심한 배멀미로 고생했던 당시 상황을 절절하게 표현해 잠시나마 듣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이민자들이 해외에서 보여준 개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인천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뜻을 모아 건립됐다.

19세기 초 국내 현실은 계속되는 가뭄으로 혹독한 굶주림이 이어지고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정치적 사건들이 나라 안팎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지배를 받는 하와이는 ‘미국 본토’로 보내질 ‘사탕수수’ 재배가 한창이었지만 재배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사탕수수 노동자가 부족한 미국 상황과 국내의 빈곤한 현실과 혼란스러운 정국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 모집 공고를 내 이민 지원자를 모집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기후는 온화하여 심한 더위와 추위가 없다. 모든 섬에 다 학교가 있어 영문을 가르치며 학비가 무료다. 농부들은 어느 절기든지 직업 얻기가 용이하다. 일요일에는 휴식하며 월급도 많다. 병의 치료비도 무료고 집도 제공한다.’

당시 하와이 이민 모집 공고 내용을 본 국민들은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지원한 결과, 총 86명의 지원자가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하루 열 시간씩 중노동을 해야 하는 고통과 감시하는 자의 ‘가죽채찍’은 슬프고 애달픈 이민 역사를 남겨 주었다.

노총각들의 결혼을 해결하기 위해 중매쟁이가 보내준 사진만 보고 결혼을 해야 하는 ‘사진신부’라는 사회적 아픔도 등장했다. 실제 53살인 남편의 25살 때 찍은 사진을 보고 하와이로 가서 결혼하게 된 이○○ 할머니의 어이없는 사연은 당시의 이민 현실에 대한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독립운동 자금모금’에도 참여해 조국의 독립과 발전에 힘을 보탰던 하와이 이민자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오직 고국에 대한 그리움 하나로 견뎌내고 노력하여 오늘날 미국 내 주류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음은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해외 이민 동포들에게 보내는 감사편지다.

“힘들고 고된 역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고자 자리 잡으신 해외 동포 여러분이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이 피땀 흘려 모아주신 독립 후원금은 큰 도움이 되었고 ‘성실한 한국인’의 이미지를 외국인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분의 노력과 도움이 있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저희들이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게 여러분들의 나라사랑의 헌신적인 모습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저 또한 저의 자녀를 키우는 한 아이의 엄마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좀더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 년 전에 이민을 갈 생각을 하신 것도 너무 대단하고 독립운동까지 도우셨다니 정말 정신력과 의지가 감사한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 사는 20대의 국민으로써도 ‘이민’이란 것은 선뜻 선택할 수 없는 길인데 선조들의 역사의 애국심에 대해 자긍심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무심코 돌아보고 나올 수도 있는 박물관, 그곳에 담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내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 편의 감사편지를 쓴다는 것. 어찌 보면 작은 행동이지만,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뜻 깊은 선행이 아닐까?